또로그 TTOLOG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자원활동 후기 본문

세개 평화 Three peaces/GRL PWR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자원활동 후기

조미또 2018. 3. 7. 15:43

내가 원하는 사회로
- 한국여성대회 자원활동 참가동기

처음 여성학을 접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런 학문이 있는 줄도, 심지어 내가 그렇게 많은 차별을 경험한 다는 것도 몰랐다. (학교에 페미니즘을!) 성적에 맞춰서 입학한 여대에서, 여성학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기에 강의계획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시간이 맞는 과목을 신청하여 수강하게 됐다. 그 때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졸업하기 위해 채워야 하는 자유 학점은 모두 여성학 수업으로 채웠다. 졸업한 후에는 더 이상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여성학과 페미니즘분야의 책을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그러던 중에 점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만연한 차별에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내가 하는 것은 그게 다였다. 내가 원하는 사회로 바뀌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노력을 해야했다. 그때부터는 공동행동과 시위를 찾아다니며 참가했다. 2017년에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불편한 마음은 해소가 되었지만, 이번엔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마침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었고 지원하게 됐다.


여성이 마음대로 먹고, 입고, 살 수 있는 사회로
- #Change_Up 캠페인

내가 원하는 사회로 바꾸기 위해 자원봉사에 지원한 나에게 #Change_Up 캠페인은 정말 반가웠다. 스무 살 때 여성학을 처음 접한 이후로 나를 옥죄고 있던 코르셋들을 하나 둘 벗어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힘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기 검열’이다. 사람은 예쁘지 않아도, 마르지 않아도 괜찮다. 여성도 사람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이 옷은 너무 짧아.’, ‘지금 간식을 먹으면 뱃살이 더 나올 텐데….’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이것은 비단 나뿐 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은 많은 여성들이 자기 검열을 하느라 본인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도록 한다. 여성은 너무 지쳤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WHO RUN THE WORLD? GIRLS!

- 제34회 한국여성대회 후기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가장 감동적인 것은 나, 그리고 다른 모든 여성이 주체가 되어 행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속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  무대를 중심으로 양 옆에 다양한 참여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최 측이었던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부스에서는 직접 피켓을 만들 수 있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MeToo 운동(미투 운동)이 활발해졌지만, 사회는 여전히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의심하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도 힘이 되기 위해 ‘성범죄 관련 무고죄 약 150건/성범죄 약 30,000건 (0.5%), 우리나라는 꽃뱀이 아니라 땅꾼이 많다’라는 피켓을 만들었다. 그러자 어떤 분이 피켓 내용이 맘에 든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내 목소리도 들어주고 응답해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평소에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라, 사소한 일이지만 매우 감동적이었다.

한편 무대에서는 샤우팅 행사가 한창이었다. 시민들은 무대위로 올라가서 초등학생 시절 담임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고, 사이버성폭행을 당한 일 등을 이야기했다. 이 날 모인 약 3,000명의 사람들은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발언자와 함께 울고, 분노하고, 소리쳤다. 앞으로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처럼 모두가 미투 운동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믿고 지지하는 목소리를 함께 냈으면 좋겠다.

▶ 또한 샤우팅에서는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 씨도 발언을 했다. 박한희 씨는 최근 일각에서 ‘트랜스 여성은 진짜 여성이 아니다’며 트랜스 여성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상황이 차별 받는 사람들의 운동을 분열시킬 위험을 지적하며 “누가 ‘진짜 여성’인지를 가리는데 노력을 쏟기보다는 진정한 억압에 맞서 함께 싸우자” 하고 차별에 맞선 단결을 강조했다.[각주:1] 개인적으로 요즘 고민하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들을 수 있어서 뜻 깊었다.

행사에 참가한 부스들도 굉장히 다양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부스를 통해서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해서 더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의 부스에서는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또 행사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오면서 생긴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얻고, 앞으로 발전해야 하는 부분을 알았다. 이번 행사는 개인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은 여성을 뽑지 않기 위해 면접순위를 조작하여 여성입직을 봉쇄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최악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을 보여준 ‘한샘’ 등이 발표됐다. 또한 올해의 성평등 디딤돌은 성별임금격차의 심각성을 공론화한 ‘3‧8 조기퇴근 시위 3시 STOP 공동기획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스트 선생님 ‘마중물샘’ 최현희 교사 등이 수상했다. 걸림돌과 디딤돌이 하나씩 호명될 때, 힘껏 야유를 하거나 환호를 보냈지만 마음속으로 너무 부끄러웠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 ‘페미니즘 잘 아는 애’로 통하던 나였는데, 몰랐던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와 차별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그것의 피해자도 어디에나 있다. 여성 개인의 목소리는 묻히기 쉽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런데 사건이 이렇게 공론화가 되어 투쟁하는 동안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행사를 통해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 여성학과 페미니즘을 접하고 코르셋을 집어 던졌던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당당한 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항상 ‘여성스럽게’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던 내가 시위에 나가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댄스팀’이 되었다. 역시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몇 명 안되는 동료들과 함께 높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무대 앞의 참가자들이 함께 동작을 따라하고, 환호해주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너무나 즐겁게 웃으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여성들이 이렇게 모여 울고, 웃고, 말하고, 소리치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장(場)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역사속의 선배들과, 함께 즐겨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나도 이번 행사를 통해서 내가 얻은 무수한 에너지를 다음의 후배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1. 노동자 연대, 한지후 기자, ‘성소수자‧장애인 등 차별받는 사람들이 도심을 활기차게 행진하다’ (http://wspaper.org/article/19754.html) [본문으로]

'세개 평화 Three peaces > GRL PW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이갈리아의 딸들>  (2) 2018.02.09
책 <82년생 김지영>  (2) 2018.02.09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2) 2018.02.09
영화 <히든 피겨스>  (2) 2018.02.09
Comments